창업자들과의 거리 좁히기 – 우리 모두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내 것, 소유, 주인의식, 갈증.

나는 항상 내 것을 추구한다. 어딘가에 속해 일하면 그곳에서 만들거나 파는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한 것처럼 여기고 싶어 한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해서 자부심 혹은 부심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스타일 덕분에 내 것을 추구하지 못할 때, 내 것에 대한 갈증에 빠질 때에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거나 번아웃이 되어 버리거나, 이탈하고 싶은 욕구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두 명의 창업자와 다른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데, 나는 이들 창업자를 보면서 어떤 갈등을, 아니 갈증을 느끼고 있다.

창업자들은 정말 밤낮없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과 자원을 이 일에 쏟아붓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은 내 마음에 어떤 그림자를 비추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그림자를 보게 된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나는 이일을 그들(창업자들)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까?
– 나는 그들 만큼 목마름을 느끼고 있을까?
– 나는 지금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내일’을 해야 ‘잘’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한계

이런 질문을 고민하기에 앞서,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나는 당신이 가진 고민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당신만큼 당신의 고민으로부터 가까운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고민과 ‘거리’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부자’는 ‘가난’과 거리가 있다. 남성은 여성의 그것과 ‘거리’가 있으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과 부모, 노인과 청년, 국민과 정치인, 선수와 팬, 고용주와 직원들은 ‘거리’가 있다. 뛰어난 교감능력을 갖추더라도 결코 더욱 가까이할 수 없는 한계로써의 ‘거리’가 있다.

나는 모든 것의 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거리의 한계에 대한 인정이라고 부른다(그냥 거리의 한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력하고 노력하더라도 가까이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인정한 뒤에야 극복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일은 ‘온전히’ 나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창업자들이 직원들보다 열의를 가지지 않는 사업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알 수 있다. 창업자들이 직원들 보다 열의를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이것은 창업자들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극복

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이유는, 극복하기 위해서다. 시작하고 계속하기 위해서다.
나는 창업자들과 나의 거리차가 있음을 알기에 줄여가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거리차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없애려 할 수는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창업자들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