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I를 이용한 마음 읽기. 셀프 프로파일.

저는 위즈덤센터라는 곳에서 얼마간 근무한 적 이 있습니다. 그때 배웠고 익혔던 것이 WPI 라는 성격 프로파일 검사입니다. 그래서 종종 WPI 프로파일을 해보고는 합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check.wisdomcenter.co.kr을 이용하시면 검사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여튼 아래로는 제 스스로 저에 대한 WPI 프로파일링을 한 것입니다. WPI 프로파일을 이해해 보고 싶으시다면, 황상민 박사의 책 ‘마음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제 도움을 바라신다면, 마음 읽기를 도와 드릴 수도 있습니다.

5월 26일 프로파일

6월 16일 프로파일

고경만씨가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자기평가로 드러납니다. 고경만 씨는 남다른 이상을 추구하는 아이디얼리스트 유형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스타일이 뚜렷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고, 스스로가 옳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때문에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견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아이디얼리스트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어려워 합니다.
아이디얼리스트들은 추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고, 직관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아 그게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닌것 같은데 뭐라 반박할 말이 없네’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현실 왜곡장” 역시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얼리스트 기질이 발휘된 결과 이기도 합니다.
고경만씨 같은 아이디얼리스트 유형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삶에서 경험한 것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눈과 자신의 눈을 계속 마주하고 있지는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고경만씨는 로멘티스트의 성향이 뚜렷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성향이 발휘가 된다면 아이디얼리스트가 어려워 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어렵지 않게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멘티스트의 성향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감수성이 높기도 합니다. 예민하기도 하죠. 사람들로 부터 미세하고 긴밀한 관심을 받으려고 합니다. 전형적인 아이디얼리스트들은타인으로 부터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고경만 씨가 로멘티스트의 성향이 있는 아이디얼리스트 라면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으려고 할 것이고 타인들과의 공감이 좀 더 수월 해지는 방향으로 특성이 발휘 될 수도 있습니다.

고경만씨는 평상시에는 아이디얼리스트의 성향만이 뚜렷 하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로멘티스트 성향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경만씨가 살면서 추구하는 것들은 타인평가로 드러납니다. 고경만 씨가 추구하는 것들은 첫 째로 셀프(자기자신), 둘째로는 향유를 즐기고 있고, 세번째로는 믿음(신뢰성,책임)을추구하고 있습니다.
고경만씨는 관계(타인으로 부터의 관심)와메뉴얼(반복적이거나일률적 통제) 수치가 현저히 낮습니다. 아이디얼리스트인고경만씨는 타인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에게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인식 되기 쉽습니다. 또한 메뉴얼 수치도 현저히 낮은 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것도 통제하기를 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통제 당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다른 사람들보다 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경만씨의 높은 셀프 수치와 향유 수치는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타인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하고 싶지만 타인들과 관계를 맺기는 힘듭니다. 당신은 현재 매우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보이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얼리스트인고경만씨는 자신의 특성을 활용하여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 가지고, 다른 사람을 연구하듯이 관찰하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연습을 위해서는 힘들겠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아이디얼리스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하니 자신만의 세계, 상상의 나래를 글로 정리해 블로그나 SNS로 공유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창업자들과의 거리 좁히기 – 우리 모두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내 것, 소유, 주인의식, 갈증.

나는 항상 내 것을 추구한다. 어딘가에 속해 일하면 그곳에서 만들거나 파는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한 것처럼 여기고 싶어 한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해서 자부심 혹은 부심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스타일 덕분에 내 것을 추구하지 못할 때, 내 것에 대한 갈증에 빠질 때에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거나 번아웃이 되어 버리거나, 이탈하고 싶은 욕구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두 명의 창업자와 다른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데, 나는 이들 창업자를 보면서 어떤 갈등을, 아니 갈증을 느끼고 있다.

창업자들은 정말 밤낮없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과 자원을 이 일에 쏟아붓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은 내 마음에 어떤 그림자를 비추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그림자를 보게 된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나는 이일을 그들(창업자들)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까?
– 나는 그들 만큼 목마름을 느끼고 있을까?
– 나는 지금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내일’을 해야 ‘잘’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한계

이런 질문을 고민하기에 앞서,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나는 당신이 가진 고민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당신만큼 당신의 고민으로부터 가까운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고민과 ‘거리’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부자’는 ‘가난’과 거리가 있다. 남성은 여성의 그것과 ‘거리’가 있으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과 부모, 노인과 청년, 국민과 정치인, 선수와 팬, 고용주와 직원들은 ‘거리’가 있다. 뛰어난 교감능력을 갖추더라도 결코 더욱 가까이할 수 없는 한계로써의 ‘거리’가 있다.

나는 모든 것의 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거리의 한계에 대한 인정이라고 부른다(그냥 거리의 한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력하고 노력하더라도 가까이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인정한 뒤에야 극복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일은 ‘온전히’ 나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창업자들이 직원들보다 열의를 가지지 않는 사업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알 수 있다. 창업자들이 직원들 보다 열의를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이것은 창업자들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극복

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이유는, 극복하기 위해서다. 시작하고 계속하기 위해서다.
나는 창업자들과 나의 거리차가 있음을 알기에 줄여가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거리차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없애려 할 수는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창업자들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