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취급 받던 미디어(소설, 시, 만화) 진영, 그들에게 가치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사례 몇가지.

마이너 취급 받던 미디어(소설, 시, 만화) 진영, 그들에게 가치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사례 몇가지.


(페이스북 친구분께 공유해 드린 내용도 있었고 나름 한번 써보고 싶어져서 적어 내려갑니다)
제가 사회에서 느낀 소설, 시, 만화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마이너였습니다.
아니 지금도 사실상 마이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 웹툰의 등장으로 조금 가치가 상승한 주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존 전통 미디어의 Digilog 접근의 과정에서 불합리하게 저 평가 받던 분야들 (소설, 시, 만화, 교육) 진영에게는 정말 절묘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측면에서 오늘은 시나 소설 위주로 글을 구성하고, 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 풀어 보겠습니다.

* 앨범의 노래를 한 소설에 묶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소설이 진행되면서 같이 들을 수 있는 노래, 아니 가수가 하고 싶은 말들을 소설에 접목 시켜 노래와 함께한다면 정말 매력있는 컨텐츠가 될거야!

한 앨범자체가 이야기! 그 이야기! 인 것이지!

#1. 20대 초반.
제 고등학교와 20대 초반에는 정말 여러 음악이 주는 에너지들을 체감 했습니다. 그때 마침 소설과 시에 관심이 많았었고 그리고 당시에 앨범의 중요성에 대한 이슈도 접했었고, 나름 오랫동안 한 가수의 팬이기도 한 배경에서 이 아이디어가 나온 것 같습니다. 매우 심플합니다.

#2. 저의 첫 습작 소설. 그리고 그 시가 알려준 시도.

제 첫 습작 소설은 중1때 썻 던 짤막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제가 팬인 가수 분의 노래가 소설의 테마입니다.

“고백”이란 제목의 소설과 “고백”이란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소설에는 습작 시도 있었습니다.
조잡한 시이지만 일단 적어 보겠습니다.

동그란 원을 그려 알 수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여…
동그란 원을 그려보세요…

동그란 원을 그리셨다면,
그 정성과 시간만큼 당신을 사랑했답니다.

동그란 원을 그리셨다면,
그 정성과 시간만큼 당신만을 사랑한답니다.

동그란 원을 그리지 못하셨다면,
그 동그란 원이 너무 작았나 보군요…

당신이 그린 원들…
잘 생기지 못해도…

저는 그 원들 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동그라미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위의 박스 안의 내용이 그때 적은 시이고 아래에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실망은 해도, 나와 주실 거지요…?

월요일 아침 2시…

어둠은 깔리겠지만 그 주위는 당신의 원들이 밝혀줄 겁니다.

그리고 위에 시만을 따다가 그 당시 활동하던 습작 시 카페에 올렸습니다.

그때 어느 분께서 제게 “원태연”시인이랑 비슷하다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습니다. (하지만, 원태연이라는 성함은 잊혀지지가 않더군요)그간에는 습작 정도의 관심에 머물러 왔는데, 요새는 소설과 시 같은 문학 창작에 관심이 더 많아져서 저랑 비슷하시다는 원태연님의 책과 제가 좋아하는 작가 분의 책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보 문고에서 택배 상자를 열었죠. 책 한 권 한 권을 꺼내 들다 보니, 딱 붙어 있는 두 권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책이 테이프로 덕지덕지 감겨 있었고, 그 덕에 한 책의 표면에 끈적한 이물질들이 있었습니다.
순간 “포장을 이렇게 … 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죠.
그리고 뭔데 이렇게 덕지덕지 한가 싶어서 테이프들을 벗겨 냈고, 테이프를 벗겨낸 곳에서 종이 CD 케이스가 보이자 마자, 짜증이 포근한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 맞다. 주문할 때 CD 포함이라고 되어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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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D 케이스가 반가웠던 이유.
전체적으로 뒤적여 보니, 영화에 대한 평은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감수성은 좋게 평평 받는 것 같더군요. (관련글 연결)

그런 면에서 성공한 작품이라기보다 실패한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할 것은 예전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태연 씨라는 기성 작가의 시도로 말이지요.

그러면 나름 평이 좋았던 시도는 없을까요? 텍스트 중심의 시도가 없었을까요?

#4. 텍스트 중심의 사례.

  • 얼음나무 숲의 시도.
    (사진 출처 리디 북스)

    http://novel.munpia.com/1268/page/1/neSrl/9887 (당시 온라인 연재되던 게시물 1화.)

    개인적으로 사인 본도 가지고 있는 작품이고 굉장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온라인 연재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제 첫 습작을 쓸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 이 습작을 나름 저에게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만 했던 이런 시도들이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가온 컨텐츠 중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판타지 문학” 쪽에서 나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판타지 문학의 평이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심지어 “국내 판타지는 *레기 야!” 라는 말도 듣던 기억이 있네요.

    그러던 중 2007년, 판타지 문학에 새로운 신작이 출현 합니다.

    042213_1335_4

    • ∮ 첫 번째, 배경음악과의 연계.
      온라인 연재 때, 배경음을 깔아 놓았었습니다.(현재 음악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배경음악 목록은 [이 게시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음악과 이 소설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시라면, 네이버 지식인에 보면 이 소설에 나온 배경음악들의 제목을 묻는 게시물까지 있었습니다. ( 사실, 지식인 이외에도 팬들 사이에서 작품의 배경 음악에 대한 관심은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궁금하시면 오백원! [클릭]!

    이정도 사례로도 나름 참고하고 주목해야 할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배경음은 지금은 좀 진부한것 같아요.

    • ∮ 두 번째, 오디오 북 아니 오디오 드라마!
      그러나 이 소설로 볼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선 저는 다음 방식의 표현법은 직접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소개와 URL 링크로 대신 하려고 합니다. (사실 CD판의 기회를 놓쳐서, 다음 소장 판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만, 현실 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오디오 드라마화 공지글 을 보시면 http://audien.com/index.htm 이라는 주소가 나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얼음나무 숲”을 검새가혓서 들어가셔야 볼 수 있습니다.(검색 주소가 안떠서 이렇게 연결해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 ∮ 세 번째, [소장판]
      저는 Digilog 시대가 Analog 라는 개념의 약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nalog 적 가치의 격상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디지털로 인하여 물질적 공간에 대한 가치가 증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맞는 개념들은 “프리미엄, 소장판” 과 같은 개념들입니다.
      그리고 얼음나무 숲은 오디오 드라마는 이런 비슷한 추세를 따릅니다.
      프리미엄적인 소장판 이라고 하기 보다는 CD 판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만, 디지털 제품의 실물화로 소장한다는 시도를 높이 사고 있습니다.작가님의 이전 블로그에 관련 게시물들이 있더군요.
      클릭하시고 들어가 보세요
      (제가 매력적인 일러스트 들을 보고 구매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는 중이긴 합니다.)
  1. 결국.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 미디어와 컨텐츠들은 적응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들을 들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형태로, 여러가지 기술들을 접목 시키려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태껏 문자 기반의 컨텐츠는 본래 지닌 가치보다 더 저평가 받아왔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자 기반의 컨텐츠가 거의 모든 컨텐츠의 기반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겁니다. 어느 컨텐츠를 막론하고,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문자를 기록해서 컨텐츠를,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가장 기본적인 출발이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문자 컨텐츠는 거의 모든 컨텐츠들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문자 컨텐츠는 어떤 형식으로 형태로 컨텐츠를 구성하던지, 어떤 기술들을 접목하던지 유일하게 변치 않는 “기본”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인, 소설가, 문학작가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으신것은,

자신의 가치를 굽히지 않으시면서, 여러 분야에 도전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문자 기반의 컨텐츠는 위와 같이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매우 치명적이고 엄청난 특징들입니다.
만약 작가 분들을 저 평가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히 맞서시고 같은 예술가로써 많은 사람들과의 유대를 가지시고 그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문자 기반의 컨텐츠의 장점을 아신다면, 단점도 수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자 기반의 컨텐츠만이 할 수 있는것“이 있지만, “문자 기반의 컨텐츠만으로 할 수 없는것” 이 있습니다.

이렇게, 장점과 단점을 바라 보시게 되실 때, 진정한 작가분들의 가치를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란, 이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될때 우리 자신의 가치를 굽히지 않으며, 도전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가지며 협업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자본측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작가분들 본연의 가치를 훼손할 때는, 자본과 어울리지 마시고 사람과 어울리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본에 휘둘리게 된다면 결국 권리를 그 자본이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텍스트 기반 컨텐츠가 주도권을 잡기를 원하신다면, 자본에는 굽히지 마시고 사람과는 함께 하시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Let’s Thinking
with Me?
생각 놀이! 저와 함께 하실래요? 
 
 

http://becausethink.kr  , By G., Thinkist 해경, 가론.
ver. 2013.  4.30 ; 0
ver. 2013. 12.28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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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호가인가? 어떤 애호가인가? ]

[나는 애호가인가? 어떤 애호가인가? ]    

제가 가입한 페이스북 그룹 중 “미래를 창조하는 애호가”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한번의 강연에서 비롯된 온라인 그룹입니다.

그곳에 올라온 게시물 중 하나로 제가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기 그룹 명이 말하는(혹은 주장하는) 것처럼 분명 [애호가]들에 의해서 주요한 움직임들이 생기게 될 것이고, 이것들은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 애호가란 특정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애호가라는 개념은 분명 어떤 특정 경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애호가 집단이 엘리트 집단이라거나 힘을 가진 집단, 혹은 좋은 능력자들만의 집단, 일반인은 속할 수 없는 닫힌 집단은 아닙니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사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애호가”여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애호가여야 합니다. 외적 원인에 의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적 원인에 기반해 있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반듯이, 모든 애호가의 출발은 자신을 지키는, 자기 애호가여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애호가” 라는 개념이 제가 어떤 애호가인지를 설명하거나,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왜냐면,
“난 나를 아낍니다”
와 같은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구는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존재던지 자신을 아끼지 않는 존재는 그 기본적인 상태가 아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 애호가” 아니, “자기 애”을 애호가의 출발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다만, 이 기본적인 출발은 너무도 당연한 나머지인지 대부분의 많은 분들께서 무시하고 계시거나, 미처 신경 쓰시지 못하고 있으시는 것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 그럼 저는 무슨 애호가일까요?
그럼 이제 제가 어떤 애호가일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그 출발점에 [자기애]에서 시작하면, 결국 제 인생이 제가 어떤 애호가 인지를 말해 줄 것 같아서 제 어릴 적을 간단히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 전 어릴 때 활동을 보자면 만들기, 발명, 과학탐구, 컴퓨터(프로그래밍) 같은 것을 관심을 가지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러면 저는 아마도, 이공계열의 애호가일 수 있겠군요.
  • 아, 다시 보니 글 쓰기, 문학, 도덕, 철학, 사회 같은 인문과목도 열심히 했던 것 같네요, 좋은 근거는 아니지만 시험 점수도 더 높았군요. 그러면 저는 아마도, 인문계열의 애호가일까요?
  • 음, 전 이공계열 애호가이거나 인문계열 애호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위의 두 문단에서 구분한 “이공계” 라던지 “인문계” 라는 구분은 사실 옳지 못한 구분 같네요. 왜냐면 저 구분은 학문으로 구분한 것인데, 본래 학문은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예전에 보면 뛰어난 과학자 분들 중에서 “철학자” 분들이 꽤 많으셨던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 그럼 대체 전 무슨 애호가일까요?
    철학? 일 까요?
    – 글쎄요, 철학에서 출발 되었을 수 있지만 뿌리에 가깝거나 그 뿌리 일뿐 입니다. 과학과 철학은 분명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철학이라는 것의 애호가라고 저를 특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 그럼, 차이점 말고 공통점을 보면 될 것 같네요. 과학/공학과 철학/문학 같은 것의 공통점은 무엇일 까요?
    : 치열한 고민, 탐구, 질문, 이해, 생각.
  • 공통점이 고민, 탐구, 질문, 이해, 생각 같은 것이 군요.
    과학자, 철학자, 문학 작가 같은 분들의 결과물들이 나오는 것은 이런 공통점들에 의해서 일 것입니다.
    그럼 저런 것들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런 것들이 풍기는, 저 단어가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마도 제가 아끼는 것이겠군요.

#. 좀 거창하지만, 전혀 거창하지 않은 결론.

고민, 탐구, 질문, 이해, 생각” 이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고”일 것입니다.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말씀 드린 듯 전 수학이나 물리시험에서 성적은 잘 안나 왔습니다.
시험 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나 보내요. 시험은 학습의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습이 생각이라는 개념과 매우 비슷한 개념인 것도 같네요. 그럼 시험은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생각의 결과물이 곧 생각 자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고]라는 것은 이론 같은 결과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 과정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저는 사고 애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거창하다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전혀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어쩌다 보니, 우연하게도 얻은 생각.

“사고 애호가”라는 것은 그 개념의 범위가 넓습니다. “너무” 넓습니다. 이렇게 너무 넓은 범위를 고집하다가는, 너무 넓기에 애호가로써 미래를 더 좋게 만들거나, 구성하려는 대 필요한 최소치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 필요한 것은 집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점은 본능으로써의 제가 어떤 것만 파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마인드맵 같이 연결 사슬들을 따라서 사고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존의 “너무” 넓은 범위가 넓어서 미처 푸르지 못하고 매력 없는, 마치 사막과 같은 공원을 일군다고 한다면, 이런 마인드맵(로드맵)이 있는 제 이야기들은 나무 하나 하나를 심어가는, 언젠가 푸른 공원이 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지닌 것 같네요.
어차피! 인생은 불확실한 가능성의 연속. 그러니 저는 이 가능성을 따라 가야겠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근래에 이런 길을 걷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다른 많은 분들의 조언들을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그럼 내일이 가슴 벅찬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